Q. 어릴 때부터 내향적이셨다고요.
대학 때 MT를 못 갔어요. 집에서는 방에 들어가서는 잘 안 나왔죠. 친구들하고도 오래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낮에 지내는 건 그럭저럭 괜찮은데, 밤까지 있는 건 힘들었어요. 피곤함이 몰려오면 어디라도 혼자 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요(웃음).
이런 성향을 제 친구들도 알았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잘 어울리지를 못해"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어요. 그런 제가 직장을 다닌다고 하니 가족들이 걱정부터 하더군요. "네 성격엔 교수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면서요.
Q. 걱정이 무색하게 초고속, 최연소로 사장이 되셨어요.
승진할 때마다 '초고속,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어요. 겉보기에는 순탄하게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쉬웠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웃음). 승진 직전마다 늘 어려운 과제를 맡아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크게 번아웃을 겪기도 했어요.
Q. 그럼에도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던 이유는요.
내향적이기는 했지만, 소극적이진 않았어요.
둘은 또 다르다고 봅니다. 서른다섯에 임원(상무보)이 된 후 처음으로 심리 검사를 받아봤는데, 제 공격성이 상위 3% 이내라고 하더군요. 깜짝 놀랐어요. 검사해 주시는 분이 공격성이 사람을 향하면 주변을 힘들게 하고, 자신을 향하면 우울증이 된대요. "그런데 당신은 다행히 일로 간 것 같다"고요.
생각해 보면 어떤 과제가 주어졌을 때 움츠러든 적이 별로 없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팔 걷어 붙이고 "그래, 한 번 해보자" 했죠.
Q. 늘 일이 잘 된 건 아니었을 텐데요.
2000년대 초반, 휴대전화 사업 북미 시장 진출을 맡았어요.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잘 극복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었어요.
그런데 이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시장이 전환될 때 대응이 늦었습니다. 애플, 삼성이 빠르게 신제품을 내고 뭇매를 맞으며 노하우를 쌓을 동안 우리는 실험실에서 연구만 했어요. 90%의 선점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사업 책임자로 복귀해 마지막 승부수를 걸기도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고요.
대신 그때의 경험을 살려 전기차에서는 남들보다 3~4년은 빨랐어요. 다른 업체가 넘보기 힘들 정도로 시장을 선점했죠. 그렇게 실패의 경험을 레슨 삼아 성과를 만들어 갔어요.
Q. 리더의 자리에 오를수록 외향적인 면이 필요하지는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저도 남들 하는 것처럼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잘 되지도 않고, 힘들기만 하더군요. 그래서 포기했어요(웃음). 오죽하면 회사에서 가장 술 잘 먹는다는 부장이 저를 데려다 특훈을 하기도 했는데 1년을 못 가 포기했으니까요. 술을 못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해서 회식 때는 늘 총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는 건 성과밖에 없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니 일을 개선하는 것 정도로는 부족하더군요. "그거 네가 다 한 거 아니잖아" "그 정도야 뭐"라는 반응에 그치는 게 현실이었죠. 그럼 어떻게 해야 누구도 부인 못할 성과를 낼까. 그걸 일찍부터 연구하고 고심했어요.
Q. 연구한 결과가 어땠나요?
2가지를 했어요. 일단 무슨 일을 맡든지 완벽하게 체득하려고 애썼어요. 어느 정도 해내고 나면 일의 전제와 가정을 바꿔봤습니다. 일에는 대개 가정이 있어요. 그 일을 시작할 당시 상황이나 필요에 의해 정한 일하는 방식이죠. 시대가 변했는데 아직도 맞는 방식인가? 따져보면 지금은 맞지 않는 경우가 눈에 보였어요. 그걸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해보니 일을 완벽하게 하는 건 개선에 그쳐요. 하지만 전제를 바꾸면 상당한 임팩트를 줄 수 있어요.
두번째는 나만의 성과 개선 프로젝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거예요. 일의 전제를 바꾸는 건 최소 2~3년이 걸립니다. 회사가 그만큼 잘 기다려주지 않아요. 겪어보니 통상 6개월 내에는 뭔가를 보여줘야 하더군요. 그래서 아침마다 '6개월 안에 성과 날 일이 뭘까' 고민했어요. 그렇게 6개월, 1년, 2년 걸릴 일들을 나눠 제 나름대로 운영했습니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내가 운영하는 프로젝트와 연관 지어 보고, 업데이트 하면서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저 사람에게는 무슨 일을 맡겨도 성과가 난다"는 평판이 들리더군요.
Q. 일의 전제를 바꾼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에 접근한 거예요. 제가 경영혁신본부 부장이던 시절, LG그룹의 편의점 사업이 만성 적자에 시달렸어요. 두 달간 데이터를 분석하고, 현장 실사를 해보니 원인이 보이더군요. 그간 "편의점 사업은 점포 수를 임계치 이상으로 늘려 상품 구매력, 운영 경쟁력을 갖추면 이익이 난다"는 전제하에 일해왔던 거예요.
그렇게 수년간 점포 수 늘리기에 경영 드라이브를 걸어온 터라, 관련 부서들은 임대료가 비싸도 매출을 최대한 낙관적으로 전망해 출점을 승인했고요. 적자 점포는 계속해서 늘었지만 관련 부서 간 책임 공방만 요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프로젝트팀은 신규 점포 출점 프로세스 변경을 제안했어요. "좋은 입지를 저렴하게 확보해 수익에 기여하는 점포를 늘려야 한다"는 거였죠. 경영진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출점 프로세스에 점포당 예상 수익 기여율을 반영했습니다. 이후 1년 내 흑자 전환을 하며, 급격하게 성장한 기억이 나요.